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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I HYUN

KIDULT

2023 동덕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학과 한국화 전공 조형예술학 박사 

2016 한성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학과 전통진채화 전공 석사 졸업

1996 성신여자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 11회 및 다수의 아트페어,국내외 그룹전 

Art Story

동심의 위로, 순수의 회복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인간의 삶은 불안하고 불안정하기에 늘 이상적인 상태나 상황을 꿈꾸게 마련이다. 흔히 회자되는 유토피아나 무릉도원 등은 바로 그러한 예의 하나일 것이다. 시대의 변화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이상에 대한 인간의 요구와 욕망은 서로 다른 양태로 표출되곤 하였다. 정보화시대로 일컬어지는 현대문명의 양태는 그간 인간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이자 충격이다. 기계문명의 절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변화는 대단히 급격하고 일상적으로 진행된다.

과학 문명에 힘입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인간들은 늘 변화의 요구와 마주하게 되고, 이를 통한 무한경쟁의 치열한 일상에 내몰리게 된다. 이러한 치열한 일상의 삶 속에서 현대인들은 종종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마주하게 된다. 문화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작용하여 인간적인 가치를 확인하고 회복시켜 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변화에 적응하고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일상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다 감성적이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심리 상태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공통적으로 꿈꾸는 소박한 이상의 실체일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과거의 욕망과 그 대상이 단편적이었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보다 복잡한 욕망의 출구와 대상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욕구의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는 욕망이다. 오늘의 우리는 없어도 되는 나머지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라고 진단하고 해설한다. 즉 “전통적 가치를 이어서 내려오던 사회의 이상향이 수많은 정보의 흐름 속에서 변화되는 개인의 가치관과 충돌하면서 다르게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새로운 욕망과 관습은 결국 완전히 채워질 수도 정형화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 가치관에 현대 사회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융합하고 접목하여도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라는 해설이다.

이러한 진단과 이해를 통해 작가는 키덜트(kidult)적인 가치와 의미를 통해 현대인의 치유를 기대한다. 키덜트는 80년대 등장한 신조어로 아이를 뜻하는 kid와 어른을 뜻하는 adult의 합성어다. 즉 어른이면서 어린아이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거나 그러한 행동을 동경하는 어른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의 어떤 가치, 또는 그 가치 자체를 모방함으로써 과거를 그리워하고 대중의 심리를 자극하는 성인들의 유희적 감성을 바탕으로 한다. 이의 특징은 진지하고 엄숙하며 무거운 것 대신 유치할 정도로 천진난만하고 재미있는 것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키덜트는 키치적 속성과 팝 아트의 이념과 일정 부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것은 친근하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본(Bon)과 쿠키(Cookie), 그리고 아톰(Atom)이라는 특정한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구체화한다. Bon은 파스텔톤의 색조가 섬세하게 중첩되며 이루어내는 조화가 인상적이다. 작가는 이를 바쁘게 살아가지만 외로운 현대인의 감정을 대변하는 동시에 복잡한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심리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설한다. Cookie는 소비라는 사회적 속성에 빗대어 귀여운 곰돌이 모양의 쿠키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며 지쳐있는 현대인들에게 달콤한 휴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Atom은 권선징악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구현하는 작은 영웅인 동시에 기계문명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접점으로 제시되고 있는 상징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업들은 대부분 이중적인 화면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비단이라는 매우 섬세하고 민감한 바탕에 안료를 반복하여 칠하는 노동과 같은 과정을 통해 특유의 은은하면서도 섬세한 색채를 구현해 낸다. 그것은 안료의 쌓음인 동시에 시간의 축적이기도 하다. 안료를 쌓아가는 과정은 전적으로 작가의 의지를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시간은 이를 무작위적인 것으로 환원하며 또 다른 조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이다. 이중적인 화면은 단순히 물리적인 화면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가 충돌하고 융합하는 접점이라 여겨진다. 아이와 어른,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 등의 복합적이고 중의적인 설정으로 읽힌다. 특히 디지털과 아날로그, 물질과 현상 등으로 그 의미를 확장해 본다면 작가가 굳이 키덜트라는 형식을 차용하고 이를 통해 현대와 현대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들이 일상이라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벗어나 감성적이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자 할 때 옛 어린 시절의 환상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키덜트로 대변되는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일탈이나 동심 회귀와 같은 심리적 퇴행 현상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이미 미술을 비롯한 영화와 음악, 패션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보편화 되어 수용되고 있다. 키덜트는 대중문화를 통해 대중들의 감성을 충족시켜 줄 뿐 아니라 현대라는 시공을 살아가는 인간 존재 방식의 한 부분으로서의 대중의 삶 한 부분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키덜트의 천진난만하고 재미있는 현대적 유희에 오랜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아내는 작업은 나에게는 빠른 일상에서 느린 행복을 찾는 시작점이다.”라는 작가의 말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전하는 안온한 메시지이자 위로이다. 그것은 유쾌한 일탈이자 내면의 의식 한 구석에 감춰져 있을 은밀하고 흐릿한 동심의 회복을 통해 비로소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이상향에 대한 초대이다. 작가는 대량생산되고 소비되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통해 현대라는 사회의 속성과 현대인의 삶을 은유하며, 이를 통해 급변하는 현실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은밀한 작은 숨 쉴 곳, 혹은 숨고 쉴 곳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미술을 통한 특수한 사회적 기능의 수행일 뿐 아니라 인간 존재 방식의 한 부분으로서의 대중의 삶 한 부분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키덜트적 유희를 담은 작품을 통해서 일상에서 지친 하루를 달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상상 속의 유토피아로 안내하며 추억 속에서 평안함을 느끼게 하는 평온한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소망한다.”라는 작가의 말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개괄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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